
경기남부 충청북부인을 위한 주류박람회, 서울 가지 말고 여기서 시음해보세오
어제 수원주류박람회를 다녀왔습니다. 솔직히 규모만 놓고 보면 서울 쪽 박람회보다 작습니다. 그래도 경기 남부에서 다양한 주종을 한자리에서 보고, 새로 나온 술이나 평소 접하기 어려운 전통주를 알차게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갈 만한 행사였습니다. 공식 안내 기준으로 2026 수원주류박람회 경기주류관광페스타는 4월 3일부터 4월 5일까지 수원메쎄에서 열리고, 관람 시간은 11시부터 18시, 입장 마감은 종료 1시간 전입니다. 바로 옆에서는 코리아 커피&디저트 페스티벌도 같은 기간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도 한 번 다녀왔고, 올해도 다시 가봤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수입 주류보다 전통주 부스 비중이 더 크게 느껴졌고, 신생 브랜드가 확 늘었다기보다는 기존에 익숙한 올드스쿨 브랜드들이 여전히 중심을 잡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 안에서 어떤 술이 기억에 남았는지, 올해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실제로 무엇을 사왔는지까지 정리해보겠습니다.
1. 기본정보
수원주류박람회는 경기 남부 기준으로 접근성이 꽤 좋은 편입니다. 공식 전시 개요를 보면 행사는 수원메쎄에서 열리고, 품목도 와인, 맥주, 전통주, 스피릿, 안주, 주류용품까지 넓게 잡혀 있습니다. 작년 행사 기준으로는 115개사 참가, 16,261명 관람 규모였기 때문에, 서울 박람회보다 작다고 해도 허전한 수준은 아닙니다. 경기권에서는 오히려 적당히 보기 좋은 크기라고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박람회가 열리는 수원메쎄는 바로 수원역에서 도보로 넘어갈 수 있도록 환승센터 고가로 이동 가능합니다. 수원역은 1호선과 수인분당선은 물론 ktx도 다니기 때문에 교통의 요충지라 멀게는 충청 북부에서 오기도 좋습니다.


저는 이번에 운 좋게 초대권으로 입장해서 입장료를 아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도 박람회 즐기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티켓을 꼭 정가로만 사는 게 아니라, 시기별 얼리버드나 초대권 이벤트를 잘 보면 생각보다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수원주류박람회는 내일까지라 아직 못 가신 분들은 일정만 맞으면 충분히 막차를 탈 수 있습니다.
2. 올해 달라진 점
작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 가장 먼저 느낀 건 유료 시음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부스별 대표 제품을 가볍게 맛보게 해주는 곳이 더 많았는데, 올해는 주력 제품 쪽은 소액이라도 유료 시음으로 운영하는 부스가 꽤 보였습니다. 아주 큰 돈은 아니지만, 관람객 입장에서는 “무작정 다 마셔본다”보다 조금 더 선택적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분위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안주 부스가 확실히 강해졌다는 점입니다. 오코노미야키, 떡볶이, 케밥, 절임생선, 치즈처럼 중간에 술을 깨고 갈 만한 안주 부스가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주류 박람회는 자칫 계속 마시기만 하다가 금방 지칠 수 있는데, 올해는 안주 쪽이 보강돼서 중간중간 흐름을 끊어 가기 훨씬 좋았습니다. 바로 옆 커피·디저트 박람회와 함께 열리는 일정도 이런 체감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현장 분위기였습니다. 운 좋게도 유명 주류 유튜버 와인킹님이 방문해 취재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와인 부스만 도는 게 아니라 전통주 부스에서도 꽤 세심하고 꼼꼼하게 질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풍경이 보이면 박람회 자체의 활력도 더 살아납니다. 전체적으로는 커피·디저트 박람회보다 주류박람회 쪽이 훨씬 활력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3. 가장 기억에 남은 부스들
이번에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단연 대밭고을이었습니다. 신상 막걸리 이름은 돼지찰 화도 막걸리로 설명을 들어보니 토종쌀 막걸리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했습니다. 대나무수액으로 만드는 대밭고을 술은 원래도 산미가 기분 좋게 살아 있는 편인데, 이번 신상은 그 산미와 바디감, 균형감이 특히 좋았습니다. 가볍게 튀는 산미가 아니라 술 전체를 정리해주는 느낌이라서, 한 잔 마시고 지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같은 부스에서 맛본 담 라이트도 좋았습니다. 저는 원래 고도수 쪽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대밭고을 약주는 이상하게 라이트 버전 쪽이 산미가 훨씬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세종대왕 어주로 유명한 장희도가에서 선보인 쑥향 가득한 약주, 쑥스러움도 인상적이었고요


두 번째로 기억에 남은 곳은 윤주도가였습니다. 모주 스타일을 베이스로 한 약주와 탁주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본이 1000ml라 양도 두둑한 편인데, 계피·대추·생강 같은 모주의 익숙한 향이 촌스럽지 않고 고급스럽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그냥 “향신료 맛이 난다” 수준이 아니라, 익숙한 모주 결을 현대적으로 잘 다듬은 느낌이었습니다.


지나가면서 봤던 우리서막의 막걸리 아이스크림도 인기가 많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부스들은 꼭 구매를 안 하더라도 박람회에서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올해 처음 본 브랜드 중에서는 헬로 디스틸러리가 꽤 인상 깊었습니다. 쌀이 아니라 수수보리, 보리, 밀 같은 잡곡을 세련되게 써서, 6도밖에 안 되는데도 꾸덕하고 깊이감 있는 바디가 느껴졌습니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증류소 운영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보리고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제품이라고 하셨고, 올해 9월쯤에는 이 술을 기주로 한 증류주도 본격적으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듣는 재미가 박람회에 있습니다.
또 한 곳은 강산주조였습니다. 직원분이 정말 진심으로 설명을 해주셔서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는 소곡주 스타일이 너무 달아서 컨디션 따라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강산주조 쪽은 이걸 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이었습니다. 산미와 구조감을 살려서 페어링하기 편하도록 만든 쪽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손이 갔습니다.
같은 양조장에서 만든 불소주도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양조장의 강점은 소곡주에 있는거 같습니다. 포장재도 감도가 높아서 선물용으로 부담없어 보이고, 해외 관광객 선물로도 좋아보입니다.

4. 조금 아쉬웠던 점
올해는 유독 한국 와인 양조장이 많아 보였습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입 기준이지만, 아직은 한국 와인이 향의 다양성이나 구조감, 단맛·짠맛·신맛·쓴맛의 조화에서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지금은 “재밌게 본다”와 “사서 마신다” 사이에서 아직은 전자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반대로 수입 와인 부스도 이상하게 올해는 계속 물맛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화이트 위주로 많이 마셔서 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술의 질 문제라기보다 칠링 문제가 더 컸습니다. 스파클링이나 샴페인이 아니고서야는 얼음가득한 버켓이 아니라, 적당히 서늘한 온도로 길게 유지해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그 부분이 들쭉날쭉하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박람회 안에서도 와인킹 팝업 같은 데서는 전용 칠링기나 온도 조절에 훨씬 신경 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와인 쪽 아쉬움은 술 자체보다 운영 온도에 더 가까웠다고 봅니다.


그 와중에 헬레닉와인 부스는 작년에도 좋았고 올해도 꽤 체계적이었습니다. 참여자 취향을 먼저 물어보고, 섹션을 나눠 추천하고, 설명을 붙이는 방식이라 좋았습니다. 무작위로 이것저것 따라주지 않고, 니즈를 먼저 보고 맞춰준다는 점이 훨씬 전문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런 부스는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접근하기가 편합니다.

5. 직접 사온 술 5병
이번에는 제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술을 사왔습니다. 막걸리 / 와인 / 바이주 / 소주 / 약주 이렇게 다섯 갈래로 나눠 담았습니다. 박람회 후기를 쓰실 분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카테고리를 미리 정해두고 사오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그래야 집에 가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막걸리는 헬로 디스틸러리의 수수보리와 밀을 샀습니다. 둘 다 좋았지만 성격은 조금 달랐습니다. 밀은 산미감이 더 도드라져서 신맛 좋아하는 분께 잘 맞을 것 같고, 수수보리는 전체적인 구조감이 훨씬 안정적이었습니다

와인은 올빈와인에서 유통하는 주앙피레스로 선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남유럽, 신대륙 와인 좋아하는데(돈이 없어서) 포르투갈 와인이 은근 매력있습니다. 설탕물 같이 달달한 디저트와인의 재료인 모스카토를 사용해 만든 드라이 모스카토 와인으로, 모스카토 특유의 풍성한 과일향은 느껴지지만 단 맛을 절제시켜 부담없이 넘어가는 맛입니다.

바이주는 1800년 전통의 고정공주를 골랐습니다. 파인향이 강한 농향형 타입이고 2만 원대 가격이라 알성비가 좋다고 느꼈습니다. 용량은 500ml였습니다. 마오타이나 수정방 처럼 고가형 바이주가 갖춘 묵직함이나 구조감은 덜하지만 너무 싸구려 고량주의 톡 쏘는 알콜취는 덜하고 입에서 굴리면 부담없이 넘어가고 상큼한 과일향이 기분이 좋아 데일리로 마시기 좋습니다.

약주는 아까도 언급한 담 라이트를 골랐습니다. 오리지널도 있지만, 제 입에는 담 라이트의 산미가 훨씬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산미 없는 약주는 마시다 보면 느끼하고 무거울 때가 있는데, 담 라이트는 깔끔해서 화이트 와인 대용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카테고리를 나눠 사오면 박람회 뒤에도 술이 덜 겹치고, 집에 와서 마실 때 재미가 있습니다.
6. 방문 팁과 마무리
수원주류박람회는 잘만 돌면 재미도 있고 득템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돌아다니다 보면 리델 케이스 손상분 할인 판매처럼 술잔이나 액세서리를 건질 기회도 있습니다. 그래서 술만 보는 게 아니라 주변 소품까지 같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방문 팁은 아주 단순합니다.
물을 자주 마셔야 합니다.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물을 계속 같이 마셔야 합니다.
구매 욕심이 있다면 캐리어나 손수레가 거의 필수입니다.
화장실 위치는 입장하자마자 먼저 확인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욕심내서 들이키지 말고, 조금씩 맛보면서 취향을 좁혀가는 방식이 훨씬 낫습니다. 이것만 잘해도 박람회를 훨씬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통 팁 하나는 꼭 적어두고 싶습니다. 수지나 성남 쪽에서 오시는 분들은 700-2번을 탈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승강장 번호를 꼭 잘 확인하고 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공식 노선도 기준 700-2번은 오리역에서 출발해 수지, 수원역을 거쳐 수원대학교 방향으로 가는데 중간에 수원역이 경유지라 승강장을 잘 확인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갑니다. 저도 잘못 탔다가 화성 쪽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 적이 있어서, 이건 정말 강조하고 싶습니다.
박람회는 내일까지입니다. 아직 못 가보신 분들은 너무 망설이지 마시고 한 번 다녀와보셔도 좋겠습니다. 서울 박람회만큼 거대하지는 않아도, 경기 남부에서 이 정도로 다양한 술을 한 번에 보고 맛볼 수 있는 자리는 생각보다 흔치 않습니다. 전통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특히 더 만족하실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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